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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의 친필 유묵 시 '등루', 이게 왜 한국에 있어요?
중국 당나라 유명 시인
두보(712~770)의 '등루'라는
시 유묵이 한국에서 최근 발견됨
고배도자기과학감정원에서 안목감정,
과학감정 등을 거친 결과 진품으로 판정
현존하는 두보의 글씨는
이 유묵이 발견되기 전까지
전세계 어느 박물관에도 없었다.
아마 거의 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불타서 없어진걸로 추정된다.
이 등루라는 시는 명확하게
갑신년 춘모(744년)에
지어졌다고 적혀있으며
이때는 두보가 이백을 만나는 시기라
많은 시를 짓고 있을 때였다.
결과적으로 이 유묵이 나타남으로 인해
역사적인 추측이 실제로 고증되었다.
이 유묵에 나타나는 인장은 총 44개이며,
이 중 청나라 황제인
'건륭의 보물'이라 칭하는 인장만 11개로
그 당시에도 최고의 보물로
여겨진 것으로 확인된다.
중국 : 뭐임??? 그게 왜 한국에 있음???
한국 : 뭐임??? 이게 왜 한국에 있음???
'유묵(遺墨)' 뜻은?
'유묵(遺墨)'이란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남길 유(遺)'자와 '먹 묵(墨)'자의 조합이며 말 그대로 사망자가 생전 먹물을 이용해 쓰거나 그린 모든 일체의 작품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이 죽기 전 가족 및 가까운 친지에게 자신의 재산 및 유품의 분배 문제, 또는 개인의 사적인 문제에 대하여 작성한 문서를 유서(遺書),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유언(遺言), 사망자가 소지하고 있다가 남긴 물건은 유품(遺品)이라고 합니다.
두보의 유묵, '등루' 시의 발견과 함께 다시 주목받는 황제, 건륭제
두보의 유목이 대학원생들에게 가지는 의미.Ssul
두보는 시성(詩聖)이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시인으로 시선(詩仙) 이백 (이태백) 과 더불어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일차적으로 이 유묵은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박물관에도 없는 두보의 유묵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만, 문학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가 존재한다.
두보의 시 등루(登樓) 내용
花近高樓傷客心(화근고루상객심),萬方多難此登臨(만방다난차등임)。
錦江春色來天地(금강춘색래천지),玉壘浮雲變古今(옥루부운변고금)。
北極朝庭終不改(북극조정종불개),西山寇盜莫相侵(서산구도막상침)。
可憐後主還祠廟(가련후주환사묘),日暮聊爲梁父吟(일모료위양부음)。
<원문출처> 登樓/ 作者:杜甫 唐 / 全唐詩·卷228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높은 누각 가까이 꽃이 피었으나 나그네 상심하여,
만방의 많은 어려움 이곳에 올라 내려보네.
금강의 춘색은 온 천지 가득한데,
옥루의 뜬 구름은 예나 지금 변함 없네.
북극성과 같은 조정은 바꾸어질리 없으니,
서산 오랑캐들아 쳐들어 오지마라.
가련한 후주를 사당에 모심이(제갈공명) 덕이려니,
날 저물어 양부음(용사의 노래)으로 마음 달랜다.
원래 이 시는 764년 지어진 시로 알려져 있었고, 萬方多難(만방다난, 온 세상이 어지러운 때)은 西山寇盜(서산구도, 서산의 도적들)과 연결되어 토번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시기가 어떤 시기였나, 광덕(廣德) 원년(元年:763) 당이 안녹산의 대란으로 혼란에 빠지자 토번의 티쏭데짼(ཁྲོ་སྲོང་ལྡེ་བརྩན, 적송덕찬) 이 20만 대군을 몰아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광덕지변으로 광무왕(廣武王) 이승굉(李承宏)을 황제로 세운 시기이다.
진짜 당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였고, 이 때 두보의 나이가 53세로 파직을 경험하고 좌천되어 성도를 떠나 기주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래서 후주환사묘(후주 유선이 아직도 사당에 있으니)와 양보음(제갈량이 남양 융중에 은거할 때 부르던 노래 이름)을 엮어 뜻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불우함을 나타낸 시라고도 해석했었다.
두보의 유묵 발견으로 인해 다시 쓰여지는 역사적 사실
하지만 띠용!
알고보니 이 시는 갑신년 춘모 (744년) 에 지어진 시였고 이 시기는 광덕지변이 일어나기 전이다.
두보의 나이가 33살로, 24살에 본 시험에 떨어져 놀러 다니던 시기이고, 오히려 당나라의 장군 고선지가 달해부를 평정하고 돌궐 제2 제국이 멸망하는 시점이다.
그러니까 뭐다? 대학원생들 눈에 불이 난다!
그리고 이 시기가 바로 두보와 이백이 만나서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인데, 원래 양보음(梁父吟) 에는 종류가 두 가지 있었다.
"지금 제갈량과 이백이 지은 두 가지의 〈양보음〉이 전해지는데, 제갈량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공손첩(公孫捷), 진개강(陳開疆), 고야자(顧冶子) 세 명의 용사(勇士)에게 복숭아 두 개를 가지고 서로 다투게 하여 끝내 모두 ■■하게 만들었던 안타까운 일을 서술하였고, 이백은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과 역생(酈生)을 거론하며 지사(志士)가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는 비분강개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이백이 지은 양보음 (梁父吟) 이 천보 3년, 바로 744년에 지어진 시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그냥 이백이랑 만나서 놀다가 "아 나는 왜 벼슬을 못하지? ㅅㅂ 열받네! " 하고 지은 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묵 하나로 시와 사람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게 참...대학원생들...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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