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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라이프 LIFE 사진작가가 찍은 증오의 눈(Eyes of Hate)
시사 사진잡지 라이프 LIFE 소속 사진작가 중 가장 유명한 저널리스트,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Alfred Eisenstaedt)는 1936년 11월 처음 발매된 라이프 창간호부터 주간지 시대가 마감된 1972년 말까지 전속 작가로 활동하였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급격히 세를 불리며 성장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NSDAP, 엔에스데아페), 일명 나치(NAZI)당의 당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수상이 된 1933년 9월, 국제연맹 15차 총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칼튼(Carlton) 호텔 정원에서 비서, 통역사와 함께 있던 나치 독일의 대중계몽선전국가부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자그마한 35㎜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있는 사진작가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AP통신(Associated Press), 일러스트리에테 자이퉁(Illustrierte Zeitung) 등 거대 출판사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는 국제연맹 총회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 사진을 찍으려 참석하였는데, 사진을 찍던 도중 그의 유대인식 이름을 듣게 된 요제프 괴벨스는 급격히 표정이 굳으며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아이젠슈타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He looked up at me with an expression full of hate.
The result, however, was a much stronger photograph.
There is no substitute for close personal contact and involvement with a subject, no matter how unpleasant it may be.
He looked at me with hateful eyes and waited for me to wither.
But I didn’t wither.
If I have a camera in my hand, I don’t know fear."
"그는 증오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훨씬 더 강한 사진이었다.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대상과의 긴밀한 개인적 접촉 및 참여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는 나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가 주눅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주눅들지 않았다.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으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의 첫 만남
아이젠슈타트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는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의 첫 만남'이 있습니다.
요제프 괴벨스가 아이젠슈타트를 노려본 사진이 찍힌 후 약 한달 뒤인 1933년 10월 16일, 나치 독일의 수상 아돌프 히틀러가 국제연맹 탈퇴를 선언합니다.
독일에서 급격히 성장한 나치즘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와, 파시즘을 주도했던 국가 파시스트당의 이탈리아 왕국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의 만남은 독일의 국제연맹 탈퇴로부터 약 반년 뒤인 1934년 6월에 이루어졌습니다.
두 초강대국 독재자의 만남은 3년 뒤,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전세계를 전쟁의 화염속으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훗날 추축국(樞軸國, Axis powers)으로 불리게 되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3개국 동맹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굵직한 세계사를 기록으로 남긴 시대의 거장,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
타임스웨어의 대일 전승기념일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타임스퀘어의 대일 전승기념일(V-J Day in Times Square)'입니다.
V-J Day란 Victory over Japan Day, '대일 전승기념일'이란 일본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날을 뜻합니다.
미국에서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을 가리키며, 영국에서는 일본 정부가 일본의 항복을 국민에게 공표한 날인 8월 15일을 기념합니다.
더 키스(The kiss), 수병의 키스(kissing Sailor)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사진은 미국 동부 표준시 기준 1945년 8월 14일 오후 5시 51분에 촬영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이 패망하여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기뻐하는 미국인들이 뉴욕 시 맨해튼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환호하는 도중 치과위생사 그레타 짐머 프리드먼(Greta Zimmer Friedman)이 술에 취한 미 해군 수병 조지 멘돈사(George Mendonsa)에게 기습 키스를 당한 장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인상깊은 장면을 똑같은 순간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미 해군 사진기자 빅터 요르겐센(Victor Jorgensen)이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 동일한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포착한 사진, '종전의 키스(Kissing the War Goodbye)'를 공개하였습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미국의 승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겨지기에 동일한 모습을 본딴 조각상이 미국 곳곳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 키스는 서로 연인관계가 아니며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간에 합의되지 않은 우발적인 키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일어나자 비난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에서는 이 이미지를 전쟁 승리가 가져다 준 극도의 희열감 속에서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키스의 추억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남성이 물리력을 행사해 여성의 입술을 훔친 추악한 성범죄로 보아야 할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 속 간호사 그레타 짐머 프리드먼은 2016년 9월8일 향년 92세, 해군 병사 조지 멘돈사는 2019년 2월 18일 향년 95세의 일기로 타계하였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아이젠슈타트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아이젠슈타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의 초상과 아이젠슈타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상
월트 디즈니의 초상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사진을 찍어 남긴 아이젠슈타트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는 그야말로 20세기라는 시대 전체를 통째로 사진에 찍어 남긴 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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