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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단편 소설, 공포] 도와주는 전화통화
" 무슨 번호가 이래? "
핸드폰에 뜬 번호를 바라보며, '홍혜화'는 미간을 좁혔다.
'010 - 0000 - 00000'. 번호가 한 자리 더 있었던 것이다.
" 여보세요? "
[ 홍혜화씨?! 홍혜화씨 맞습니까?! ]
건너편 사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다급했고, 홍혜화도 덩달아 조금 긴장했다.
" 네...? 맞는데요? "
[ 끊지 마십쇼! 이 한 통화를 연결하기 위해 수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절대 끊지 마십쇼! ]
" 네?? "
홍혜화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경악했다!
[ 2016년 x월 x일 이죠?! 그날이 바로, 홍혜화씨가 살해당한 날입니다! ]
" 네에?! "
[ 저는 30년 뒤 미래에서 전화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
" 이, 이 무슨?! 장난하지 마세요!! "
[ 잠깐만요! 절대 끊지 마십쇼! 이 한 번의 연결에 수억 원이 들었습니다! 제발 끊지 마십쇼! 제 얘기를 들어주십쇼! ]
" 아니 무슨...! "
홍혜화는 머리가 복잡했다. 신종 보이스피싱일까? 그냥 끊어버릴까?
끊을 타이밍을 놓친 사이, 사내가 빠르게 물었다.
[ 지금 시각이 정확히 몇시입니까?! ]
" 네? 아... 6시 40분인데요? "
[ 아! 잠시만 기다리십쇼! 절대 끊지 마시고요! ]
" 아니~ 도대체 지금 무슨...! "
인상을 쓰는 홍혜화의 귀에, 핸드폰 건너 사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가 작게 들려왔다.
'빨리 x월 x일 저녁 7시 뉴스 다 뒤져봐!'
홍혜화는 자꾸만 끊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은 느낌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곧,
[ 아, 홍혜화씨?! 7시에 유럽에서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답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십쇼! 7시에 분명 그 뉴스가 뜰 겁니다! 절대 이 통화를 끊지는 마시고요! ]
" 아니 무슨... "
홍혜화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내가 너무나도 간절하고, 또한 그 내용이란 것도 심상치 않아 전화를 끊지 못했다. 자신이 살해당한다지 않는가?
사내가 계속해서 기다려 달라 말하는 사이에 7시가 넘었고, 홍혜화가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 헙! "
정말로 비행기 추락사고 뉴스가 떠 있었다! 홍혜화의 동공이 커졌다!
" 어머머머?! "
[ 아! 확인하셨습니까 홍혜화씨? 그럼, 이후 8시의 일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본 총리가- ]
사내는 8시의 사건도 알려주었고, 홍혜화는 불안해졌다.
" 저, 정말로 미래에서 전화주신 거에요? 그럼 제가 오늘 살해당한다는 말은요...?! "
[ 예! '인천 연쇄 살인'의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홍혜화씨 입니다! 그 살인범이 지금, 홍혜화씨를 노리고 있습니다! ]
" 세상에...! "
홍혜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그, 그럼 어떡해요?! "
[ 절대 이 통화를 끊지 마십시오! 자료에 의하면, 지금부터 동네 마트에 갈 계획이셨죠? ]
" 어머나! 네 맞아요! 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
[ 아뇨! 마트로 나가십쇼. 절대 이 통화를 유지하시고요! ]
홍혜화는 덜덜 떨면서 사내의 지시에 따랐다. 심지어 얼마 뒤, 8시에 일본 총리의 일까지 사내가 맞추고 나니, 홍혜화의 공포심이 더욱 선명해졌다.
홍혜화는 마트에서 장을 본 봉지를 들고, 어두운 동네를 걸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 든 핸드폰이 마치 생명줄인 것처럼, 꽉 붙잡고 있었다.
핸드폰 너머 사내는 홍혜화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 주변을 잘 살펴보십쇼! '빨간 잠바'를 입고 있는 사내가 있는지 말입니다! ]
" 예, 예! "
홍혜화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향하면서도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사히 오피스텔 앞까지 도착한 홍혜화는 사내에게 보고했다.
" 어, 없었어요. 샅샅히 봤는데, 빨간 잠바를 입은 사람은 보질 못했어요! "
[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
" 아 그럼 된 거예요? 이제 안전한 거예요?? "
[ 아직은 모릅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시죠. ]
" 네, 네! "
홍혜화는 조금 안심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7층 버튼을 누르고,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 !! "
문이 닫히기 직전, 팔이 '쑤욱!' 들어와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걸 막았다!
순간, 홍혜화의 동공이 확장됐다! 빨간색이었다!
" 으... 허... "
문이 천천히 열리며, 빨간 잠바를 입은 사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홍혜화의 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홍혜화를 힐끔 한 번 쳐다 보고 홍혜화의 뒤에 가서 섰다.
홍혜화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눈을 한 곳에 고정 한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곧 필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 한 홍혜화는, 아주 작게 소곤거렸다.
" 이... 있어요... "
[ 예? 뭐라고요 홍혜화씨? ]
" 지, 지금 제 옆에 있어요...! "
[ 예? 잘 안 들립니다! ]
홍혜화의 입술이 울상으로 내려앉았다가 급히 돌아갔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무서웠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겨우겨우 쥐어짜내, 평범을 가장한 톤으로-,
" 어, 어~! 아까 너가 말한 거 있지? 봤어~! 바, 바로 옆이더라고~ "
[ 네?! 홍혜화씨?! ]
" 응~ 그, 그래서 어쩌라고 했지...? "
[ 아...! 이, 일단 침착하게, 얼른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십시오! 티 내지 마시고요! ]
" 으, 응~ 알았어~ "
홍혜화가 애써 가장한 톤이 덜덜 떨려 나왔다. 일부러,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몇마디 더 주절거렸다.
곧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춰 서고, 홍혜화는 태연함을 가장하지만, 경보에 가까운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내려 집으로 향했다!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의 열쇠 구멍을 오조준하는 홍혜화, '힐끔'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 힉! "
빨간 잠바 사내와 분명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문이 닫혔다.
홍혜화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얼른 열쇠를 잠갔다! 급히 핸드폰을 들어 다다다!
" 빨간 잠바 입은 남자였어요!! 빨간 잠바를 입은 남자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고 있었어요!! 저는 7층에서 내리고, 그 사람은 안 내리고!! "
[ 진정하십쇼 홍혜화씨! 확실히 빨간 잠바를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놈, 얼굴을 보셨습니까?! ]
" 아, 아뇨! 자세히 못 봤어요! 어쩌죠?! 그놈이 살인마예요?! 그놈이 절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
[ 진정하십쇼 진정하십쇼! 됐습니다. 문을 확실히 걸어 잠그셨죠?! ]
" 네, 네! "
[ 그럼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집 안에만 계십쇼! 괜찮습니다. 절대 전화 끊지 마시고요! ]
" 네, 네!! "
홍혜화는 불안감에 집 안을 서성거렸다. TV를 켜서 볼륨을 높여봤다가, 사내의 조언에 다시 볼륨을 줄이고.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더 무서워져서 밖으로 나오고. 부엌에 가서 부엌칼을 꺼내서 한 손에 꼭 들고. 거실에 앉아 현관문을 노려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사내에게 물었다.
" 그놈 갔을까요? 포기하고 간 걸까요? "
[ 지금 몇 시입니까? ]
" 9시 55분이요. "
[ 아직... 10시만 지나면 됩니다. ]
홍혜화는 바닥에 앉아, 현관문을 노려보며 벽걸이 시계를 힐끔거렸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한 손에는 식칼을 들고, 어서 10시가 넘기를 바라며 시계를 힐끔거렸다.
벽걸이 시계가 10시를 넘어가고, 식칼을 든 홍혜화의 손이 조금은 아래로 쳐졌을 때-,
현관문 손잡이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철컹- '
" 흡!! "
두 눈을 부릅뜬 홍혜화는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아 비명을 대신했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가까이해 속삭이는 홍혜화!
" 어, 어떡해요! 지금 현관문 열려는 소리가 났어요! 그놈이에요?! 그놈인 거예요?! "
[ 아! 현관문을 확실히 잠그셨죠?! ]
" 예, 예! 이제 어떡해요!? 이제 어떡해요?! "
[ 홍혜화씨! 침착하게! 침착하세요! ]
" 이제 어떡해요?! 예?! 이제 저 어떡해요?! 어떡해요?! "
홍혜화는 벌벌 떨었다. 그러는 사이 몇 차례 더 철컹 철컹 소리가 들렸고, 얼마 뒤. 조금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끼기긱 끼긱 끼긱- '
" ?! "
무언가, 열쇠 구멍을 쑤시는 듯한 소리였다!
홍혜화의 몸이 바싹 소름으로 얼었다! 극도의 공황 상태에 빠진 홍혜화!
" 어, 어떡해요! 열쇠 따려나 봐요! 어떡해요?! 저 어떡해요?! "
[ 열쇠를 땁니까?! 홍혜화씨! 열쇠를 따고 있습니까?! ]
" 예, 예! 열쇠 따려나봐요! 어떡해요?! 저 어떡해야 해요?! 빠, 빨리 알려주세요! 저 어떡해요?! 네?! "
[ 홍혜화씨! 정신 차리세요! 진정하세요! 홍혜화씨! ]
이윽고-
' 딸칵-. '
" !! "
자물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 으허..어...여, 열렸어요.. 열쇠가 열렸어요...! 열쇠가! 열쇠가 열렸어요-!! "
[ 홍혜화씨! 정신 차려요! 홍혜화씨! 진정하세요!! 홍혜화씨!! ]
" 으아.. 으아악-! 어떡해요?! 저 어떡해야 해요?! 예?! 빨리 알려주세요!! 저 어떡해요?! 네?! "
' 끼기이익- '
천천히 현관문이 열리고-, 홍혜화의 목소리가 비명에 가까워졌다!
" 빨리요!! 빨리!! 저 어떡하냐고요-!! "
문이 활짝 열리고, 빨간 잠바를 입은 사내가 홍혜화를 무심히 쳐다 보았다.
" 으... 어... 어어... "
공포로 온몸이 굳어버린 홍혜화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그 귓가에!
[ 홍혜화씨! 정신 차리세요! 그놈의 얼굴을 보십쇼! 얼굴을! 콧등에 상처가 있습니까?! 얼굴을 보시라고요! ]
" 이... 이... 있어요!! 있어요!! 저 어떡해요?! 예?! "
[ 아---!! ]
홍혜화가 목숨줄처럼 꽈악 핸드폰을 붙잡고, 대처를 알려주길 기다렸지만, 핸드폰 너머에선-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홍혜화씨... 정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
" 네?? "
'뚝'.
통화가 끊어졌다.
홍혜화의 믿을 수 없는 목소리-
" 에...? 예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
빨간 잠바의 사내가-, 문을 닫았다.
"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저 어떡하냐고요!! 예?! 저 어떡해요!! 예?! "
홍혜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식칼을 든 손이 벌벌 떨리며, 뒷길 없는 뒷걸음질을 해댔다!
홍혜화가 꽉 잡은 핸드폰으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 어떡하냐고요-!! 악-!! 대답해달라고요!! 아악-!! 나 어떡해요-!! "
사내가 천천히, 홍혜화에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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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간 '미제사건'으로 남겨졌던, '인천 연쇄 살인'의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당시 유력한 용의자들 중 한 명이었던, '김 남우'씨로 밝혀졌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수사에는 처음으로 '타임 워프' 기술이 시도되었는데요, '국제 타임 워프 협약'에 의해, 과거를 바꾸는 것에는 관여하지 못했지만-, 첫 번째 희생자 홍혜화씨의 증언으로 범인을 특정해내는 데 성공하여-. . . ]
출처 : 오늘의유머 "복날은간다" 님의 2016년 10월 9일에 작성된 게시물. 현재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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